크래프톤 정글 2주차 에세이
사실 이 문장을 쓰는 게 좀 부끄럽다.
컴퓨터공학과 2학년을 마쳤다. 자료구조도 들었고, 운영체제도 들었고, 알고리즘도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앱 하나 만들 수 있나?"
한 5초쯤 생각했다. 대답이 나왔다.
못 만든다.
아니, 더 정확히는 —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강의에서 배운 코드는 따라 칠 수 있는데, 빈 화면 앞에 혼자 앉으면 손이 안 움직인다. 전공자 맞냐고? 맞긴 한데. 어, 이상하다.

발버둥은 쳤다, 진짜로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2학년 때 취업을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넣자"는 마음으로 공모전을 찾아다녔다. 2025 핀테크 아이디어 대회에서는 실제 사업화 가능한 서비스를 기획하고, 어떤 IT 기술을 어떻게 붙일지 리서칭하고, 수익 모델까지 설계해서 2인팀으로 장려상을 받았다. 양재 환승코어 공모전은 혼자 처음부터 기획하고 설계해서 제출해 또 장려상. 빅데이터 크리에이터 캠프에선 AI 튜닝을 배우고 결과물을 내서 수료증도 받았다.
숫자로 보면 나쁘지 않다. 장려상 두 개에 수료증 하나.

근데 어느 순간 솔직하게 돌아봤다.
이 공모전들, 내가 뭘 잘하는지를 보여준 게 아니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골라서 나간 거였다. 개발은 못 하니까 기획 공모전. 기획이 자신 있으니까 거기서 점수를 받아보자. 그렇게 이력서 한 줄씩 채웠던 거다.
노력은 맞다. 근데 방향이 조금 비겁했다.
3학년이 됐다는 것의 무게, 그래서 정글을 택했다
컴공과에서 3학년이면 슬슬 현실이다. 인턴 얘기, 포트폴리오 얘기, 어떤 회사 어떤 직무로 갈지 얘기가 주변에서 나오기 시작한다.
근데 나는 그 시점에 뭘 만들 수 있었나.
입학할 때부터 꿈이 있었다. 내가 직접 가지고 놀 수 있는 인디게임, 아버지 가게에 달아드릴 웹페이지 하나. 거창한 게 아니라 그냥 내가 만든 걸 누군가 쓸 수 있는 것. 그게 목표였다.
2학년이 끝난 지금, 그 중에 만들어진 건 하나도 없다.
이대로 3학년 수업을 들으면 어떻게 될지 눈에 선했다. 또 수업 따라가기 바쁘고, 또 할 수 있는 것만 골라서 이력서 채우고, 4학년 때 또 "나 뭐 할 줄 아는 거지?" 하고 있을 것 같았다. 그 미래가 너무 구체적으로 그려져서 — 싫었다.
그래서 크래프톤 정글을 택했다. 한 문장이 꽂혔다.
"혼자 찾아가며 공부하는 법을 배우는 곳."
내가 부족한 게 딱 그거였다. 시키면 할 수 있는데,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 만들어내는 힘. 그게 없었다. 수업이 없으면 멈추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래서 휴학을 내고 왔다. 3학년 올라가기 전에, 이 공백을 그냥 넘기지 말자고.
왔더니 여기서도 한 방 맞았다
근데 정글에 와서 바로 또 깨졌다.
첫 미니 프로젝트에서 팀원들과 친목 시그널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내가 기획을 맡았고, 유저에게 매력적인 기능을 넣었다고 생각했다. 나름 고민도 많이 했다.
팀원이 발표하는 걸 옆에서 듣고 있었는데, 피드백이 돌아왔다.
"유저가 굳이 그렇게까지 해가며 써야 할 이유가 있나요?"

순간 뜨끔했다. 내 기획 얘기였으니까. 매력적인 기능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이 기능이 왜 있는지"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기획이었다. 유저 입장에서 생각한 게 아니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그냥 넣고 싶었던 거였다.
실제 서비스를 만들어 파는 사람들한테 그 말을 들으니 더 크게 느껴졌다.
그러고 나서 뒤를 돌아봤다. 핀테크 대회에서 장려상만 받은 이유, 양재 공모전에서 더 높이 못 간 이유 — 결국 같은 이유였던 것 같다. 기획이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학생 수준의 기획이었던 거다. 유저가 아니라 내가 만족하는 기획.
부끄럽지만 인정해야 했다. 개발도 못 만들고, 자신 있던 기획도 구멍이 있었다.
그래서 5개월 동안 이걸 얻어가고 싶다
기술적으로는 CS 기본기를 제대로 쌓고 싶다. 자료구조, OS, 네트워크 — 수업에서 배웠는데 왜 배우는지 몰랐던 것들을 이번엔 진짜 이해하고 싶다. 따라 치는 게 아니라, 내가 왜 이 코드를 쓰는지 알면서.
근데 솔직히 제일 갖고 싶은 건 따로 있다.
빈 화면 앞에서 손이 움직이는 감각.
아주 작은 거라도 좋다. "이런 거 만들고 싶은데" 하면 일단 시작할 수 있는 사람. 지금의 나는 그게 안 되니까, 그게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기획도 다시 배우고 싶다. 내가 만족하는 기획이 아니라, 유저가 납득하는 기획. 정글에서 그 감각을 조금이라도 잡아가고 싶다.
어떤 자세로 임할 것인가
딱 하나만 지키려고 한다.
오늘 막힌 것, 오늘 안에 왜 막혔는지는 알고 자자.
완벽하게 해결 못 해도 된다. 근데 "이게 왜 안 되는지"도 모른 채로 넘어가는 건 하지 말자. 그게 쌓이면 이해한 척하다가 텅 빈 2학년이 반복된다는 걸, 이제 알아버렸으니까.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는 연습도 하고 싶다. 학교에서 어물쩍 넘어가는 게 습관이 돼 있는데, 여기선 막히면 막혔다고 드러내고 부딪혀보고 싶다.
5개월 후, cedis는 어떤 모습이길 바라나
3학년으로 복학했을 때, 수업에서 새로운 개념이 나오면 "아 이거 정글에서 한번 부딪혀봤는데" 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수업을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수업이 반가운 사람.
그리고 아버지 가게 웹페이지, 정글 끝나고 나서 한번 진지하게 만들어보고 싶다. 그냥 내가 만든 거, 아버지가 쓸 수 있는 거. 그걸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서 복학하고 싶다.
이 블로그엔 앞으로 정글에서 겪는 이야기들을 써나갈 거다. 잘 이해한 것도, 완전히 틀렸다가 뒤집어진 것도, 그냥 오늘 있었던 해프닝도.
정글은 쉽지 않다고 했다. 근데 어차피 헤쳐나가야 할 숲이라면, 도망치지 말고 정면으로 뚫고 나가보자.
잘 부탁한다, 정글. 🌿
